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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아빠 ( 단편 소설)

 

 

 

춤추는 아빠

춤에 대해서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춤은 멋있어야 된다는 것을

허나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중년 아저씨다.

춤은 내 인생에 큰 보폭을 자랑한다.

어렸을 때 혼자만의 공간에서 몰래 추던 게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여전히 사람들과 가족들까지 내가 춤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 춤추는 순간 만큼은 피아노, 바이올린, 사소한 드럼라인들까지

 

드넓은 초원 위에서 쏟아지는 별빛들과 함께 춤추는 상상을 한다.

또는 비 오는 날 가만히 정류장에 앉아있으며

 

음악을 듣다 보면 저 빗속에서 나 홀로 무아지경의

경지에 올라 홀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멋있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시간이 다 된듯하다. 책 좀 보고 오겠다던 아내에게 이쯤 되면 돌아가야 된다.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나에게는 아내와 아들 한 놈 그리고 딸 한 명 이렇게 4식구가 있다.

내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전히 무뚝뚝하게 행동해야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는 말도 안 되는 철학을 지니고 있지만

 

아버지가 크게 틀리지는 않았나 보다.

 

아들놈은 좋은 대학에 딸은 고등학교 성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 모습을 들킬 수 없다.

 

춤추는 내 모습을

 

오늘도 말 없는 밥을 먹었다.

가족들은 흩어졌고 내일을 준비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간 쑤신 게 아니다.

한 번씩 추는 춤은 내가 얼마나 낡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래도 순간을 산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여전한 아침 풍경과 말 없는 식사, 이렇게 가다간 안될 듯싶다.

오늘은 내가 말을 먼저 꺼냈다.

 

아들, 학교는 어떠냐

내 생각에도 너무 상투적이다.

 

아들의 무뚝뚝한 대답에 실망한 나는 딸에게도 묻는다.

딸, 학교는 어떠냐.

 

내가 생각해도 안타깝다.

오늘도 말 없는 식사는 이렇게 끝났다.

지하철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요즘 노래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좋은 놈들이 나와 내 죽어버린 상상력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오늘 지하철 안은 어딘가 다르다.

 

스피커에 노랫소리들로 가득하다.

무심한 듯 출근하는 사람들 중 한 청년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피커는 하이라이트를 향해 더더욱 몸서리친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계속 쳐다본다.

웃음과 비웃음과 무관심으로

허나 어딘가 즐거운 표정으로

숨어있던 본능이 나를 이끄는 찰나 역에 도착했다.

회사로 걸어가는 길은 항상 여전하다.

 

그렇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스피커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가게마다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지 계속 똑같은 노래가 길거리에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춤추는 한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다.

무신경하게 학교를 가는 그 아이의 춤사위에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홀로 세상을 간직한 듯 그렇게 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이 한번씩 쳐다본다.

웃음과 비웃음과 무관심으로

 

허나 어딘가 즐거운 표정으로

나 또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조그마한 스텝을 밟으며 걸어왔다.

 

회사에 도착하니 다들 인사가 한창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회사 복도에서 계속 울려 퍼진다.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 것 같다.

 

그 소리를 아무리 쫓아도 어디인지 모르겠다.

 

저 앞에 저 옆에 벽 너머

문 뒤에 계속 노랫소리가, 이 소리가 남들은 안 들린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내 귀를 의심한다. 그렇지만 즐겁다.

 

흥얼거린다 몸이 움직인다. 허나 금세 나는 내 모습을 감추었다.

저 앞에 직장 사람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들키면 여간 곤란하다.

오늘도 일이 끝내고 다들 바쁘게 어디 간다.

오늘은 특히 더더욱 지하철로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오늘의 도심의 저녁은 어딘가 다르다.

계속 해서 들리는 이 음악 소리와 하나밖에 떠있지 않는 저 별 조차 어딘가 다르다.

차가운 공기와 사람들의 바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 앞을 내딛는다. 그냥 달리고 싶어진 것이다.

 

저기 그 아이가 보인다.

학교가 끝났는지 그의 스텝은 더욱 경쾌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따라 한다.

먼가 나사가 풀린 듯이 사람들의 눈에는 중년의 아저씨의 이상한 몸부림으로 보일 것이다.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졌지만 더더욱 발은 멈추지 않는다.

지하철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북적하다. 여기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옆을 보니 아까 그 지하철 청년이다.

무슨 노래를 듣는지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그에 발의 스텝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행복해 보인다.

지하철에 들어가니 스피커에는 계속 같은 노래가 흘려 퍼진다.

그 청년의 스텝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계속 쳐다본다.

 

어딘가 웃음과 무관심 속에 무언가 빠진듯하다.

나 또한 아까부터 발이 계속 말을 안 듣는다.

 

눈을 떼지 못하겠다.

몸은 본인 멋대로 억눌렀던 감정을 뿜어냈고 머리는 이미 즐거움으로 터지기 직전이다.

정신 차려보니 집에 도착했다.

 

노래가 끊겼다.

 

고요하다.

 

또다시 말 없는 식사를 한다.

 

오늘은 밖에 산책이라도 해야겠어서 곧바로 달려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와 나뭇잎이 추위에 몸 서리치는 소리.

아무도 없는 길거리는 나를 춤추게 한다.

오늘 저녁 하늘은 별이 가득하다. 가슴이 뜨겁다.

 

어렸을 때 이런 적이 한 번 쯤 있었던 듯한데 기억이 안 난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지만 상관 안 한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으니 오늘 밤 하늘과 너무 잘 어울려진다.

 

화면이 빠르게 움직인다.

 

뭔가가 내 몸 속 깊은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별이 쏟아지고 드넓은 푸른 초원으로 가득하다. 주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집 침대에 누워있으니 잠이 쏟아져내린다.

 

아침이 밝으니 오늘의 우리 집은 여전히 말 없는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질문이 다르다.

아들딸아, 너희 꿈이 무어냐?

여전히 무뚝뚝한 대답이겠지만, 상관없다.